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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도발? "발해는 중국의 속국" by nacaffy



한-중-일 역사교과서 분석을 토대로 고대·중세사 쟁점 중 하나가 발해이다. 최근 중국과 일본은 조공·책봉 근거로 "발해는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운영 독자성을 간과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안병우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공동대표(한신대 교수·국사학)의 언급을 통해 정확한 내용을 살펴보자.

동아시아를 구성하는 한·중·일 3개국 교과서에 서술된 한국 역사의 모습은 적지 않게 다르다. 모든 나라는 역사 교과서에서 자기 역사를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묘사하려 애쓴다. 그러나 이웃의 역사를 공정하지 않게 서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3개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사실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한사군’이다. 일부 일본 교과서는 한(漢)이 조선반도를 공격하여 낙랑군 등을 두었다고 하면서, 지도에서 충남 일부까지 한과 위(魏)의 영역으로 표시하거나 조선반도의 대부분을 영토로 삼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황해도에 설치되었던 대방군의 중심이 지금의 서울 근처였다고 기술하는 책도 있다. 한이 지배했던 영역을 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한사군 이전의 한국 역사를 서술하지 않아 우리 역사가 사실상 한의 지배로부터 시작됐다고 보이게 된 점이 더 큰 문제다. 중국의 고대 한국사 기술은 그동안 한사군보다 문화 교류에 중점을 둬 왔지만, 지금은 그나마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 교과서에 보이는 심각한 서술은 ‘임나일본부’에 관한 것이다. 이와 관련된 ‘도쿄서적’의 <새로운 사회 역사>의 기술을 보면, “5세기 무렵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의 남부 임나(가라)에 거점을 설치했고, 한반도 남부를 군사적으로 지휘하는 권리를 중국 황제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남조에 사절을 파견했다”고 적고 있다. 이에 견줘, 한국 교과서는 가야의 발전이나 백제와 왜의 교류에 관하여 서술할 뿐 임나일본부는 부정한다. 일본 교과서가 한국 역사를 한사군·임나일본부를 중심으로 기술하는 것은 한국 역사가 중·일의 영향을 받으면서 타율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왜곡된 시각을 심어줄 수 있다.

조공·책봉관계를 보자. 고대 동아시아는 세력이 강하거나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는 국가에 공물을 보내고 그로부터 책봉을 받는 조공·책봉관계라는 독특한 국제질서에 의해 유지돼 왔다. 그런데 중국 교과서는 책봉을 받은 국가가 중국의 속국, 심지어는 지방정권이었다고 기술한다. 발해가 좋은 예다.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 왜곡 교과서로 꼽히는 ‘후소사’ 교과서는 책봉을 받았다는 이유로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표현하며, 일본은 조공·책봉체제에서 빠져 있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고대부터 동아시아에 존재한 조공·책봉관계의 실제 모습은 시대마다 달랐으며, 한 국가의 자주성 여부는 형식적 외교관계뿐 아니라 국가를 독자적으로 운영하였는지 여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봉을 받았다는 점이 속국이나 지방정권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왜구의 구성도 논란거리다. ‘도쿄서적’은 왜구를 묘사하면서 “왜구 가운데는 일본인 이외의 사람도 많았다”고 적고 있다. 중국에서는 왜구의 출몰과 그것을 격퇴한 척계광의 활약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중·일 교과서는 모두 왜구에 의한 중-일의 마찰과 교류를 다루고 있을 뿐 조선이 본 피해는 언급하지 않는다.

임진왜란에 대해서 ‘후소사’는 ‘출병’으로 표현하여 침략전쟁이라는 점을 은폐하지만, ‘도쿄서적’은 조선침략이라고 분명히 기술하여 조선 민중이 받은 피해와 일본군의 잔학 행위, 도자기 제조 기술자의 연행 등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임진왜란을 ‘조선을 도운 전쟁’(援朝戰爭)이라고 가르치며 전쟁의 과정, 명나라 군대의 활약과 공헌, 이순신 장군의 전사 등을 상세히 서술했지만, 지금은 거의 서술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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